벌통 앞에서

벌을 돌보다 보면 가끔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엔 벌통 앞에 커다란 말벌들이 서성이는 걸 봤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날아와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벌 한 마리를 데려가곤 했다. 우리는 그 말벌들을 잡는다. 일벌들이 꿀을 만들어주니까, 우리는 그 작은 애들을 아끼고 지킨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벌은 45일밖에 못 산다고 한다. 사람 눈으로 보면 참 짧은 생이다. 그것만으로도 좀 안쓰러운데, 말벌들은 그 짧은 생마저 더 짧게 만들고 있었다. 매일, 몇 번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처음엔 그냥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안쓰러움보다 궁금함이 더 커졌다. 저 작은 애들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문을 나서면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알면서도 매일 그 문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든다. 무섭지도 않은 건가,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건가.

거기서 나한테도 질문 하나가 따라왔다.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매일 문 앞에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얘기로 넘어갔다. 우리는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다 안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작은 일들에 마음 졸이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한다. 나중에 돌아보면 별거 아니었을 순간들 때문에. 벌은 두려움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사는데, 오히려 두려움을 아는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을 더 힘들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그려볼 수 있어야 생긴다. 벌은 아마 그 순간의 일만 느낄 뿐,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오늘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벌 한 마리는 혼자가 아니라 벌통 전체의 일부로 살아간다. 자매들과 유난히 가깝게 얽혀 있어서, 서로를 위해 애쓰는 게 그들에겐 그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인 셈이다. 그러니 용감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애초에 두려워할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다르다.

앞일을 그려보고 지난 일을 곱씹을 줄 아는 그 마음 덕분에 누군가를 오래 그리워할 수도 있고, 먼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이유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일에 계속 마음 쓰기도 한다. 결국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과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같은 데서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비슷한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이 일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여전히 이렇게 무거울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 그렇게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의 크기가 조금은 작아지고, 정말 소중한 것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말벌에게 쫓기는 일벌들을 보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흘러갈 줄은 몰랐다.

벌통 앞의 그 작은 소동이 나한테 묻고 있었던 건 어쩌면 이런 거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 쓰고 있는 이 일이, 정말 끝까지 붙잡고 있을 만한 일인가 하는 것.

벌들은 오늘도 별일 아니라는 듯 문을 나설 것이다. 나도 가끔은 그 마음을 조금 빌려와서, 오늘의 걱정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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