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있어!

친구가 물었다. “지금 뭐 해?” 별거 아닌 질문이었는데,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 3초쯤 멈췄다. 그리고 겨우 이렇게 답했다. “그냥 있어.” 메시지를 보내놓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불안 같은 게 머릿속에 잠깐 머물다 갔다. 오늘 하루가 갑자기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 거다. 그런데 다시 하루를… 그냥 있어! 계속 읽기

벌통 앞에서

벌을 돌보다 보면 가끔 마음이 복잡해지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엔 벌통 앞에 커다란 말벌들이 서성이는 걸 봤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지치지도 않고 계속 날아와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벌 한 마리를 데려가곤 했다. 우리는 그 말벌들을 잡는다. 일벌들이 꿀을 만들어주니까, 우리는 그 작은 애들을 아끼고 지킨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벌은 45일밖에 못 산다고 한다.… 벌통 앞에서 계속 읽기

제발 나는 쏘지 말아줘

시골에 사는 언니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부모도 자식도 애인도 아니고 언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냥 편하고 든든하다. 피를 나눈 것도 아닌데 온전하게 나를 받아주고 나를 탓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주 놀러 가곤 한다. 언니는 양봉을 한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사는 언니를 보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마음 깊숙이서 욱 올라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니… 제발 나는 쏘지 말아줘 계속 읽기

빤히 보이는 그 거리

문을 닫고 신발을 벗는 것과 동시에 택배 봉투를 뜯어보고 있었다. 며칠 전에 고민하다 산 운동복 바지가 도착해서다. 제발~~ 길이가 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여전히 바지 길이는 생각했던 대로 너무나 길다~~ 수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굽이 있는 신발을 신어도 입고 나갈 수 없는 그런 길이다. 스몰 바지는 도대체 평균 키를 얼마로 잡은 걸까. 내가 평균에… 빤히 보이는 그 거리 계속 읽기

“니가 이겼어”

내 주방엔 작은 제빙기가 있다. 아이스커피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먹을 방법을 찾다가 하나 장만했다. 커피는 핸드드립으로 내려 먹으면 되니까.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제빙기 모터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삑~~~ 처음에는 짧게 한두 번 나더니, 길게 한 시간, 그러다 더 길어져 두 시간. 요즘에는 하루 종일 소리가 나서 밤에 잠을 못 잤다. AS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청소를 하고,… “니가 이겼어” 계속 읽기

“고양이가 올지도 모르겠다”

띵, 소리와 함께 톡이 여러 개 들어왔다. 같이 살고 있는 친구였다. 회사 다니는 내 단짝친구이기도 하다. 예전에 같이 살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다시 데려오면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지금 그 고양이는 언니 집에 있다. 나는 갑자기? 잘 지내고 있었잖아, 라고 답했다. 언니 집은 시골이라 고양이가 마당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아파트로 데려오면 다시 실내에서만 지내야 한다. 사실 나는 고양이를… “고양이가 올지도 모르겠다” 계속 읽기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왜 내 기름값이 오를까 — 39km가 세계를 쥐고 흔드는 법

지도에도 잘 안 보이는 그 좁은 물길 하나 지도를 아무리 확대해도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사이, 페르시아만이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좁은 목. 가장 좁은 곳은 폭이 겨우 39km. 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보다 조금 더 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39km가 막히면, 지구 반대편 한국의 주유소 가격판 숫자가 바뀝니다. 전 세계 석유의 20~30%가 이 좁은…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왜 내 기름값이 오를까 — 39km가 세계를 쥐고 흔드는 법 계속 읽기

사색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

블로그 이름을 정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일상 에세이”, “생각노트”, “오늘의 단상”… 후보는 많았는데, 뭔가 하나같이 옷이 안 맞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단한 철학자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통찰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냥 어제도 오늘도 똑같이 지하철을 타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근데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자꾸 뭔가가 걸렸다. 버스를… 사색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 계속 읽기